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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복문화상

제 27회 금복문화상(2013년)
  • 작성일2022/05/16 17:35
  • 조회 16,485


장옥관(張沃錧)
대구 / 1955년

문학부문


1987년 문단에 등단해 주목 받는 활동으로 꾸준히 성장, 대구지역의 대표적인 중견시인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정진을 거듭해 왔다. 시집 『황금 연못』,『바퀴소리를 듣는다』,『하늘 우물』,『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 등 5권과 동시집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은 그 알찬 수확들이라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4권이 문화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1권은 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등의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시는 “일상의 미세한 풍경을 포착하여 그 풍경의 정면과 이면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인식의 상투성을 깨부수고 대상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 주며, 올해 낸 시집 『그 겨울 나는 북벽에서 살았다』는 “서정주로부터 기원하는 몸들의 얼크러짐의 세계, 그 에로스의 미감들을 ‘고통의 윤리학’이라는 새로운 문제 틀로 접목시킴으로써, 흔히 ‘몸의 시학’으로 일컬어졌던 한국시의 가장 유력한 예술적 매듭을 다른 차원으로 도약시킨다.” (문학평론가 이 찬)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부터 1994년까지는 구미근로문학상을 기획, 시행하는 한편 국립합창단을 비롯한 각종 문화예술단체를 초청해 무료공연을 펼치고, 문학단체 ‘구미수요문학교실’을 결성해 소외된 공단지역에 문화예술의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매일신문에 칼럼 ‘장옥관의 시와 함께’를 집필해 좋은 시 보급에 힘썼으며, 대구시 공무원 교육원을 비롯한 각종 기관단체의 인문학 관련 강연회를 연간 십여 차례를 가져왔고, 대구문화재단 기관지 《대문》편집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인철(李寅哲)
대구 / 1962년

음악부문


오페라 명강사로 꼽히며, 오페라 주역 출연과 독창회를 통한 활동뿐 아니라 대구를 대표하는 남성중창단 이깐딴띠 단장으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대구공고 출신으로 고3 때 음악을 시작했으며, 영남대학교 성악과에 진학했으나 발음이 좋지 않아 독일의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 등의 카세트 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으며 독학했다. 그 결과 1학년 기말고사에서 노래가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목표를 잡지 못하고 시작한 음악의 길이었지만 그 때 처음으로 ‘갈 길’에 확신과 야심이 생겼다고 한다. 특히 오페라 ‘가면무도회’ 중 레토나가 부르는 ‘너였구나 내 영혼을 더럽힌 자가’(Eri tu che macchiavi quell'anima)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에 감동을 받은 것도 좋은 계기였다. 근래에 그는 재기 넘치고 걸출한 입담으로 시종일관 수강생들을 사로잡는 인기 강사로 성악과 오페라의 지평을 넓히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수업을 하면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클래식 장르에 대한 마니아층을 확산시키는 역할도 지속하고 있다.

 


송광익(宋光翼)
대구 / 1950년

미술부문


1990년대 말 ‘한지’의 물성과 새롭게 만나면서 앵포르멜적인 이미지회화로부터 구축적인 오브제 작업으로 방향을 바꿨으며, 꾸준한 실험으로 매체와 제작방식에 큰 전환을 기했다. ‘한지’라는 전통 종이에 친밀한 우리 민족의 공통의 감수성과 개인의 정서적 경험이 구현되는 변모를 보이고 있다. 화면 위에 가로나 세로로 나란한 긴골을 만들고 거기에 일정한 높이로 얇게 썬 종이를 붙여나가 작은 격실로 가득 채우는 게 그의 최근 작업형태이다. 전체를 균질한 형식으로 연속시켜 수직, 수평으로 연장해 전개방식에 따른 다양성과 설치의 가변성도 매우 큰 것이 특징이다. 또한 종이를 염료로 물들이거나 채색해 감각적인 다채로움을 끌어낸다. 많은 시간과 섬세한 노동이 따르는 작업이지만 제작에 몰입할 때 재료의 물성과 호흡하며 일체감을 느낀다는 그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가 집적되어 구축된 형태는 시각적이고 촉각적인 자극을 넘어 감상자의 정서에 동요를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석재현(石宰晛)
대구 / 1970년

사진부문


경일대학교와 미국 오하이오대 대학원에서 포토저널리즘을 전공했으며, 미시건의 일간신문사에서 사진기자로 활동 중 1997년 귀국,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활동 매체로는 New Times,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GEO, 향토와 문화 등 이며, 개인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국내외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가졌다. ‘2006 대구사진비엔날레’에 ‘Imaging Asia Documents’ 전시를 기획, 스티브맥커리를 비롯한 세계적인 다큐멘터리작가의 작품들을 국내에서 선보이기도 했으며, 개인 프로젝트로 필리픽 성인바의 직업여성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작업이 2010년 태국 외신기자 클럽에서 주최한 Photojournalism Award에서 Photo Essay 부문 1등상과 일본 Days Japan이 주최한 Photojournalism Award에서 3등상을 수상, 국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알려지고 있다. 특이한 경력으로는 탈북동포에 대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하던 2003년 초 중국 공안에 체포, 중국 교도소에서 14개월간 억류를 됐으며,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와 대학에서 후진 양성과 언론매체 프리랜서 사진작가,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스탄불 경주세계문화엑스포’에 참여해 한국 대표작가 사진전시회를 기획했다.

 


채치민(蔡治敏)
대구 / 1952년

연극부문


1969년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연극에 눈 뜨고, 라디오 성우 수업도 해 1970년 첫 연극무대에 선 이래 43년간 왕성하게 활동했다. 경북연극협회와 전국연극인협의회 부회장. 대구광역시연극협회 지회장, 대구시립극단 수석과 훈련장을 역임했으며, 연습과 공연 과정에서 모범적인 선배로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대구연극계의 화합과 발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여전히 젊은 후배 못지않은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연극인으로 대구 연극의 수준을 높이는데 이바지해 왔다. 특히 연극을 천직으로 알고 오로지 외길을 걸어온 그의 순수한 예술정신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활동의 다양성도 돋보인다. 연극배우 활동을 하면서 아동을 위한 방송에 나섰고, 대구청소년연극제를 창설했으며, 대구시립극단 수석단원과 훈련장으로 단원들의 화합과 소통, 연기력 향상에도 이바지했다. 근년에는 뮤지컬, 정극 공연 외에도 4년 동안 민족시인 이상화 역으로 거리연극에 출연하고, 2013년 9월에는 최초의 독도 공연을 했다. 대구 KBS-1TV 로컬 프로 고향 에세이 ‘사노라면’ 내레이션을 2년간 맡았으며, 소극장 무대에서 노인들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연을 주도하고 있다.

 


김선희(金善姬)
서울 / 1959년

특별상


전시 수준을 높이고 다양한 관람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시회들을 기획해 관람객들이 크게 증가하고, 대구미술관이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도록 이끌었다. 특히 ‘DNA연금술’ 전시에 관람객 수가 하루 평균 1,000명에 가까웠고, ‘쿠사마야요이’전시에는 하루 평균 3,400명이 넘는 기록을 세우면서 대구미술관의 위상을 높이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최근 10여 년간 일본과 중국에 거주하면서 양국의 현대미술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그를 토대로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동아시아 현대미술에 관심을 기울인 그는 세계미술이 서구미술의 권력구조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시대가 도래하게 되고, 특히 동아시아문화권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임을 예견하면서 새로운 전시회들을 기획했기 때문이다. ‘Nostalgia’, ‘Elegalce of Science’, ‘Animamic Biennale’, ’샹하이 e-art페스티발’ 등 다수의 동아시아 관련 전시 기획을 하고, 하셀브라드 사진미술상 등 각종 국제적인 미술상 심사위원, 국제적인 미술행사의 자문위원 등을 맡았던 경험을 토대로 대구미술관이 새로이 발전하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여주기도 했다.